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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폭행 전과…미디어업계 '일반인 리스크' 막을 수 있는 대책은

  • 작성일 : 23.03.04
  • 조회수 : 1,915

“제작진 역시 출연자의 과거사와 관련해 갑작스레 불거진 논란이 매우 당황스러운 상황입니다. 제작진이 한 개인의 과거사를 세세하게 파헤치고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이로 인해 사실 파악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는 점 양해 부탁 드립니다.”


지난 23일 MBN <불타는 트롯맨>의 제작진이 출연자 황영웅의 과거 폭행, 학교 폭력 의혹이 터지자 처음으로 발표한 입장문 가운데 일부다.


이틀 후인 25일 <불타는 트롯맨> 제작진은 두 번째 입장문에서 “출연자 선정에 있어서 사전 확인과 서약 등이 있었으나, 현실적인 한계로 유감스러운 상황이 발생했다는 점, 시청자분들과 팬분들게 죄송한 말씀을 드린다”며 황영웅이 2016년 검찰의 약식 기소에 의한 벌금 50만원 처분을 받았다고 밝혔다.


넷플릭스 <피지컬 100>에서도 3명의 일반인 출연자가 문제가 됐다. 한 명의 출연자는 과거 학교 폭력이 논란이 됐고 또 다른 출연자는 과거 연인을 협박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또 다른 한 명은 여자친구를 특수폭행했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에 조사를 받았다는 뉴스가 나왔다.


제작진 검증 책임 강조되지만 현장에선 “모든 논란 거르기 어려워”


최근 비연예인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많아지면서 ‘일반인 출연자 리스크’가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은 몇 년 전부터 지속되고 있으며 그때마다 ‘제작진의 검증 책임’이 강조됐다. 그러나 제작진의 입장에서는 수사기관이 아닌 이상 범죄 이력 등을 조회하기 어렵고, 범죄 이력을 조회한다고 해도 기록이 없는 사적인 관계에서의 논란도 자주 터진다. 때문에 현장에서는 검증 절차를 위해 수차례 면담을 한다고 해도 모든 논란을 사전에 거르기는 어렵다고 호소한다.


일반인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연출한 한 방송 관계자 A씨는 “출연자들을 면접하는 과정에서 몇 번이고 논란이 될 만한 사항을 확인하고, 서약서를 쓰기도 하지만 완벽하게 문제를 차단하긴 힘들다고 느낀다”며 “출연진 면담을 할 때 ‘논란이 터지면 방송도 방송이지만, 출연 당사자가 가장 힘들어진다’고 강조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A씨는 “범죄 이력을 조회하는 경우도 없진 않지만 사실상 문제가 되는 것은 형사 처벌을 받은 건이라기 보다 기록에 남지 않는 사생활 문제인 경우가 많다”며 “범죄 이력을 조회하는 것이 실효성이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전했다.


최근 일부 프로그램에서는 제작진뿐 아니라 출연진을 전문가와 면담을 하게 해 이러한 논란을 대비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일반인 예능 프로그램을 연출한 이력이 있는 B씨 역시 “면담을 수 차례 진행하고 과거 논란이 있을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서약서를 쓰게 한다. 서약서에는 학교 폭력과 관련한 부분, 성범죄, 금전적 거래 문제 등 꽤 구체적으로 논란이 될만한 부분이 명시돼있다”며 “제작진도 당연히 검증 책임이 있지만, 출연자 역시 상호 신뢰를 줄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모두 거친다고 하더라도 사고는 있을 수 밖에 없다고도 생각한다”고 전했다.


보도·시사 보다 문제 복잡한 예능,

연예인보다 문제 복잡한 일반인


보도나 시사 프로그램의 경우는 출연자가 사실과 다른 말을 했을 때 제작진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방송사 가이드라인을 통해 해결할 수 있고, 다수의 사례가 존재한다.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책임’이 인정된 판례들도 있다.


그러나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출연자가 프로그램에 나와 프로그램 기획 의도에 직접적으로 반하는 행동을 하거나 발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과거 행적’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기에 법적 책임을 묻기가 더욱 까다롭다.


2012년 SBS <짝> 제작진은 성인물 출연 전력이 드러나 논란이 된 출연자를 상대로 ‘출연 서약서 위반으로 프로그램의 진정성과 신뢰도가 실추됐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나 강제조정으로 마무리됐다.

방송사가 일반인 출연자에게 서약서를 통해 “사회적 물의를 야기할 시 방송사에 손해배상을 한다”는 서약을 받은 건에 대해, 일반인에게 상시적으로 지나치게 무거운 책임을 지우게 된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가 2016년 ‘시정조치’를 한 바 있다. 

[관련 기사: 신문과방송: 검증 책임 저버린 방송사, 법적 책임질 수도… ‘과거 검증’ 가이드라인 마련해야]


연예인의 경우 방송사와 어느정도 대등한 관계로 여겨지기 때문에 방송사에 손해배상을 한다는 서약서가 ‘불공정 거래’가 아닐 수 있으나 일반인을 상대로 광범위한 책임을 무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본 것이다. 


이혜온 법무법인(유한) 지평 변호사는 2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비연예인의 과거 행적 논란에 대해, 방송사가 출연자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며 “프로그램 자체에 진실성과 관련 없는 부분은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명예훼손과 악플 고소 전문 로펌인 뉴로이어 법률 사무소의 김수열 변호사는 2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최근 일반인이 방송에 출연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방송에서 인기를 얻게 되면서 논란이나 악플에 시달리고 고소고발까지 가는 사례가 매우 많아졌다”며 “문제가 되고 있는 많은 논란들은 형사처벌을 받을 정도는 아닌, 기록이 없는 개인사 논란이나 학교 폭력 등의 문제라 제작진도 예측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모든 논란을 제작진이 다 방지하기는 불가능하다. 제작진들이 알 수 없는 논란이 터졌을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제작진들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다면 방송 편집 등을 통해 최대한 방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가끔 제작진들이 출연진의 논란을 알고도 편집을 하지 않거나, 오히려 ‘방송 캐릭터’를 위해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부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조심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모든 논란 거르긴 어렵지만

구체적 논의로 더 나은 시스템 만들어야


결국 연예인보다는 비연예인 출연자이기에, 시사나 보도 프로그램이 아닌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풀기 어려워졌다고 볼 수 있다. 실효성에 의문이 있다고 하더라도 구체적 논의를 통해 한 발 더 나아간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 밖에 없다.


영국 BBC 제작 가이드 라인을 살펴보면 제작진이 출연진을 검증할 때 구체적으로는 △출연자의 신원 및 이야기를 검증해 줄 문서 자료 △출연자가 언급한 사람 이외의 다른 사람들을 통한 입증 △방송사의 명성에 누가 될 수 있는 개인정보에 대한 자진 신고 등을 해야 하고, 때에 따라 출연자에게 범죄 기록 확인을 요구할 수 있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출연자에 대한 최소한의 확인 작업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은 있지만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가 문제가 되는 상황”이라며 “결국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형평성 간의 문제이며 그 범위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논의할 때”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재산 상황 등 과도한 신상을 물어보는 식의 출연자 검증은 곤란하지만 특정 범죄 이력을 조회할 때 제작진이 어려움이 없도록 명문화하거나, 전문가로서 출연할 때 자격증 유무에 대한 검증 등은 필요하다고 본다”며 “형법 체계를 벗어나는 일을 방송사가 전지전능하게 검증할 수는 없는 일이고,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지금보다는 더 구체적인 방송 가이드라인 등을 통해 조금 더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는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